2022년도 두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평소에 간간이 찍어 둔 사진들과 빼곡히 써 내려간 기도 노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올 한해를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돌이켜 본다. 2022년 내 휴대전화 속 사진첩에는 그 어느 해 보다 유난히 어머니, 아버지의 사진들이 많고 기도 노트에는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크고 작은 이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기도가 적혀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평소에 보지 못했던 액자가 거실에 걸려있다. 검은색 목재에 금색 궁서체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내 또래의 사람들은 아마 내가 무엇을 설명하는지 뭔지 알 것이다. 그래. 바로 그거. 나는 액자를 가리키며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저게 뭐야?” 엄마는 답한다. “우리집 가훈이야.” 어째 대답을 들었는데, 영 시원치 않다. 가훈? 가훈이 뭐야? 항상 기뻐하는 것,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뭔지 알겠고... 감사하는 것도 알겠는데, 범사는 또 뭐야? 사람인가?’. 궁금증에 궁금증이 더해진다. 나는 또 엄마에게 묻는다. “범사가 뭐야?” 엄마가 답한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거.”

…네?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게 감사해야 할 일인가? 근데 그게 우리 가족이 지켜야 할 말이라니? 그 당시에 내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이후로 거실에 걸린 그 액자를 볼 때마다 “범사”라는 단어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어느 순간부터 그 액자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잦은 이사를 반복하면서 어디에 두고 왔을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이상 우리 집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의 말씀처럼 살아갈 수 없어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액자의 행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범사”의 사전적 정의를 이해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적어도 10년은 걸린 듯 하다. 내가 하나님을 떠나 있었던 근 10년이라는 시간에는 말씀이 눈에 읽히지도, 귀에 들리지도 않았기에 “범사”라는 교회 안에서만 주로 쓰일 법한 단어는 마치 우리 집 거실 한 켠에 걸려 있다가 홀연히 사라진 액자처럼 어느새 내 기억에서 잊혀져 있었다. 그렇게 성인이 되고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그 단어를 마주하게 되었다.

범사: 모든 일. 평범한 일. 그런 의미에서 보았을 때 8-9세 아이의 눈 높이에 맞춘 엄마의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거” 라는 설명은 다소 1차원적이었으나, 완전히 틀린 설명은 아니었다. 오히려 엄마의 짧고 단순한 그 한마디가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그 단어가 가진 의미가 무엇인지 탐구하도록 만들었고, 마침내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말씀의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모든 일, 평범한 일. 마땅히 감사할 수 있는 일들은 물론, 도무지 기뻐 할 수 없는 고난과 인내의 상황 마저도 감사해야 하는 삶을 살아내는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것을 계속해서 체감해가고 있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 매일 새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월동 준비로 포동포동해진 청설모를 보며 잠깐이나마 미소지어 볼 수 있다는 것. 끝이 보이지 않을것 같아 보이던 고된 하루를 마무리 할 수 있는 밤이 있다는 것.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기도라도 할 수 있게 하신것. 그 모든 것들. 허락하신 것 모두 다. 어쩌면 너무나도 사소한 나머지 보잘 것 없게 느껴지는 것들 마저도. 그렇게 생각해 보면, 주변에는 감사할 것들이 넘쳐난다.

숙제 제출이 늦었다. 이번에도 뭔가를 쓰긴 썼다. 사실 쓰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가 있었는데, 의식의 흐름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다. 손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다음달에는 어떠한 글을 쓰는게 좋을까? 코멘트에 키워드를 남겨준다면 감자하겠숩니다? 어수룩한 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것에 너무너무 감사해하고 좋아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아무래도 좀 부끄럽다. 그래도 저 밑에 ‘좋아요’를 꾸욱 눌러준다면 감자가 계속해서 뭔가를 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네번째 글 쓰기 숙제는 ㅃ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