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야기

글쓰기 숙제: 절대 자신감. 가보자고!

 
 

  글쓰기 숙제가 주어졌다. 사실, 당장에 써야 할 글이 산더미이다. 나는 2년차 대학원생. 졸업을 위해 최소 80장 가량의 졸업 논문을 써야 하지만, 현재 스코어: 달랑 한장. 논문 제목과 내 이름만 적어 놓고는  ‘시작이 반’ 이라며 정신 승리를 해본다. 근데 또 글쓰기라니요. 주여.

    글쎄. 무엇을 이야기 하면 좋을지,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곰곰히 생각해 본다.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쓰면 좋을까? 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경험 했던 것들을 쓰면 좋을까? 아니면, 내 관심 분야인 현대 미술과 그 감상에 대해서 쓰는게 좋을까? 나는 영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성숙한 면이 없는데, 이미 삶의 풍파를 겪고 겪으신 어른들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저 치기 어린 요즘 세대의 투덜거림으로 귀엽게 봐 주시겠지. 그렇다고 마냥 어린것도 아닌데. 이러나 저러나 생각만 많아지는데, 작가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없다’만 아니면 된다고.

    그렇다면. 못할건 또 뭐람. 가보자고. 내가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지난 8주동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두려움 없는 삶의 비결 ‘절대 자신감’ 이라는 주제로 순모임을 가졌다. 저마다 가지고 있는 불안의 유형들을 성경 속 인물에서 찾고, 우리는 한없이 작고 약하나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강과 안정을 누릴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귀한 자녀로 진정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음을 나누는 값진 시간이었다.

    어느 한 주는 욥이 마주한 고난에 대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거친 생각을 가진 욥, 불안한 눈빛의 세 친구, 그걸 지켜보던 엘리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열등감과 그 원인중에 하나인 비교의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욥기 32장에서 알 수 있듯 엘리후는 욥과 세 친구보다 나이가 어린 인물이다. 연륜도 많지 않아 본인의 분명한 의견이 있음에도 그저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뿐, 그것을 말 하길 주저하였다. 욥과 세친구의 논쟁을 지켜보던 엘리후는 “그러나 사람의 속에는 영이 있고 전능자의 숨결이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시나니” (욥 32:8) 라고 조심스럽게 입을 뗀다. 그리고는 엘리후는 욥의 고난에 대한 본인의 시각을 무려 5장에 걸쳐 (32장-37장) 제시하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후…엘리후..너란 사람…그저 한 줄기 빛…*

    우리를 지혜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내가 사회 경험이 많기 때문에, 공부를 잘/오래 했기 때문에, 성경 지식을 많이 알기 때문에 지혜롭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엘리후의 이야기를 통해 얼마나 계속 될 지 모르는 이 글쓰기 숙제에 대한 용기를 얻어본다. 이 용기는 ‘오랜 시간 본인의 경험들로 확립된 어른들의 견고한 사고 방식은 깨어져야만 하며, 청년들의 유동적이고 열린 사고 방식이 가치가 있고 더 존중 받아야 한다.’ 라는 식의 용기 (객기)가 절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일들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나누고자 하는 용기. 각자의 배경에 얽매이지 않는 더 깊고 풍성한 사고를 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는 용기. 조금은 어설프더라도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청지기로써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아가고자 하는 용기. 뭐 이정도로 해두자.

    여하튼. 첫 숙제는 이렇게 마무리 지어 본다. 글이 실릴 곳이 기독교 매체이다보니, 첫 시작을 하나님 이야기로 시작해 보았다. 글도 제법 얌전한 편이다. 앞으로는 조금 더 다양한 이야기로 마음껏 까불어 볼 계획이다. 어수룩한 이 글에 관심을 가져주는것에 너무 너무 감사해 하고 좋아하지만 직접적인 표현은 아무래도 좀 부끄럽다. 그래도 저 밑에 ‘좋아요’를 꾸욱 눌러준다면 감자가 계속해서 뭔가를 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 같다. ㅃ염:)